4) 인적 연망을 보여주는 자료들 ?

예를 들어 1906년 田淵友彦이 한국이 일본의 부속국이라는 전제 하에서 작성된 『韓國新地理』가 있는 반면, 1907년 張志淵이 간행한 『大韓新地誌』는 다산 정약용의 『疆域考』를 증보하여 愛國士가 읽기를 권하고 있다. 를 1992년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2호로 지정하고 1997에는 이 일기를 번역하여 원문과 함께 ≪향토연구≫ 11집으로 간행한 것이다. 이번 사업으로 수집 조사한 이종률의 자료는 일부 간행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유고의 형태로 존재하던 것이다. 이에 창녕군 근현대 자료 수집․ 5. 대구오피 관련 자료 농지개혁은 1949년 1월 국회에 농지개혁법안이 제출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조사에서는 묘지 관련 자료를 집중적으로 조사․ 또한 근대 묘지 관련 자료와 농지개혁 관련 자료를 일괄적으로 수집하였기에 묘제와 농지개혁 관련 연구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曉現彗星夕現于西’, ‘暑針九十八度’ 등 천문 기상이변과 같은 기록도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에 대한 관심도 많았던 것 같다. 특히 靑溪 金璡의 다섯 아들들인 藥峯(克一)ㆍ龜峯(守一)ㆍ雲巖(明一)ㆍ鶴峯(誠一)ㆍ南嶽(復一) 5형제가의 고문서만도 수천 점에서 수만 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1416년에 다시 나누어서 현감을 두고, 1646년(인조 24)에 連山ㆍ恩津과 합하여 恩山縣이라 하였고, 1656년(효종 7)에 각각 복구되었다.

현재 논산 부황리 파평윤씨가에 소장된 문서들을 소개하면, 개별 고문서로는 교지, 해유문서, 녹패, 망기, 호적단자 및 준호구, 簡札, 시권, 화회문기가 있다. 성책 고문서로는 辛任日記(25책), 관상완점(7책), 艮谷遺稿(3책), 강도사, 강양기사(2책), 동국문헌(2책) 簡牘帖(1책), 臨之(1책), 殿策(1책), 月沙先生辨誣奏(1책), 海虹書蹟(1책), 一言單(1책), 地理新法(1책), 要覽(1책), 五倫歌(1책), 日記(1책), 庚寅日記(1책), 地圖(1책)가 있으며, 제목 없는 성책 고문서도 2종이 있다. 공단 조성이나 택지 개발 등으로 집성촌 규모가 크게 줄어들거나 집성촌 구성원의 집단 이주로 인해 기록만 있고 현장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교지류를 비롯하여 시권, 책문, 방목, 명문, 상소, 소지, 입안, 물목, 유지, 관문, 유묵첩, 계첩, 일기류 등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다. 창간호의 편집은 권두언, 기술공부, 기고, 수필, 내고장, 회원의 일인일언, 경화회 발자취, 회원명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남아있는 방대한 양의 유고는 대부분 이 시절에 작성된 것이다. 사회 활동으로 장유지역 향토사 연구 모임인 팔판문화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장유 관동교회 장로이다. 호구단자는 10점이 있다. 강운을 호주로 하는 것이 2점, 강책이 호주인 것 1점, 강한규가 호주인 것 3점이다. 이외에 강겸선, 강준길, 이상호 등을 호주로 하는 호구단자와 노비명단만 기록되어 있는 훼손된 호구단자가 남아있다.

상주시는 경상북도 서북부에 있는 시로 면적이 1254.82㎢로 1읍 17면 6동의 행정구역에 107,266 명이 살고 있다. 합천군은 우리나라 경상남도에서도 서북부의 산간내륙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창녕군, 서남쪽은 산청군, 서북쪽은 거창군, 남쪽은 의령군, 북쪽은 경상북도 성주군과 고령군과 접하고 있다. 또한 소백산맥의 지맥으로 이루어진 합천군은 9할 이상이 멧부리이다. 2. 경화회와 『경화(耕和)』 경화회는 1963년 한국 최초의 자발적 농촌․ 특히, 경화회는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활동을 시작했기에 한국 현대 농촌운동의 기원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주민 정착지역(현재의 반송 1,3동)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그러나 현재의 실정을 보면 많은 지역에서 지역사 자료는 체계적으로 수집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사 자료는 급속히 훼손되거나 소멸하고 있다. 이들 자료는 진천군에서 시행된 농지개혁의 실상을 소상히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일기들은 격동의 한국사를 경험한 생생한 증언록이자, 김해군 장유면 관동리와 신문리를 중심으로 한 지방사회의 사람들이 격동의 한 세기를 어떻게 헤치고 살아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그 결과 1950년대 부산에서는 부산대 정치학과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혁명론 학맥이 형성되는 한편, 부산 경남의 양심적 지식인과 진보적 청년층을 포괄하는 민주세력의 저변이 확충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장기군· 경주이씨 양월문중은 15세기 세조때에 경주에 입향한 이후 줄곧 세거하던 집안으로 景漢(號:淸窩, 1560-1650), 尙一(호:愛日堂, 1585-1634), 耈徵(號:竹軒, 1609-1688)의 3代 때 크게 번성하였다.

당시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과 개혁, 특히 화적의 출현을 경계하고 외세의 침입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철저한 준비를 해야한다는 견해를 표명한 것이나, 1881년 위정척사 운동 당시 강원도 유생 홍재학 등이 올린 상소를 베껴놓은 것, 1866년 병인양요, 천주교 박해 등을 상기하면서 서학을 비판하고 왕이 전통적 왕도의 길을 걸을 것을 권유하는 내용의 상소, 야소교가 번성하면서 의리가 땅에 떨어졌음을 한탄하고 성리학의 의리를 다시 찾을 것을 주장하는 내용의 상소 등 위정척사와 관련된 상소가 다수 있다. 효경ㆍ맹자ㆍ소학 등 유교경전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정리하여 실은 글, 화폐문제에 대한 논의, 量田의 방식에 대한 비판론, 부세로 변한 환곡제도를 원래의 의미인 진대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는 글 등 정책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밝힌 논의도 다수 실려 있다. 2006년 지역사 조사 수집 사업에서는 경산 하양읍, 진량읍, 와촌면, 자인면, 중방동, 사동, 삼북동, 계양동 등 2읍 2면 4동을 조사하였으며 2007년 사업에서는 용성면, 압량면, 남천면, 남산면, 옥산동, 사정동, 신교동 지역을 조사하였다. 창녕군 근현대 자료 수집․ 수집 대상 면사무소 소장의 묘지관련 자료가 대거 수집되는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졌는데 영일군의 북면과 흥해군 동상면이 통합되어 포항면이 되었다.

4) 인적 연망을 보여주는 자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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